
아이들과 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었어요”라는 말로 독서 시간이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은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어떤 내용이었어?”라고 물으면 대답이 막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읽기와 이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사실 질문입니다. 사실 질문은 책 속에 이미 답이 있는 질문으로,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와 같이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질문은 아이가 자기 생각을 언어로 꺼내는 글쓰기의 씨앗이 됩니다.
`가을을 파는 마법사` 속 사실 질문
이종은 작가의 『가을을 파는 마법사』는 계절의 변화를 마법처럼 표현한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아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누구였니?”
“마법사가 팔고 있던 건 무엇이었니?”
“마법사는 어디에서 장사했니?”
이 질문들은 모두 책 속에 직접적으로 나와 있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책 속 장면을 떠올리며 “마법사예요.”, “가을을 팔았어요.”, “장터에서 팔았어요.”라고 대답합니다.겉으로는 짧은 답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순간이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작입니다.
1대1 수업 사례
2학년 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은 뒤,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마법사가 팔고 있던 건 뭐였니?”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을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다시 이어서 질문했지요.
“가을을 판다는 건 어떤 걸 팔았다는 뜻일까?”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단풍잎이랑 시원한 바람 같은 거요.”
처음에는 한 단어였던 대답이 점차 문장이 되고, 또 그 문장이 그림처럼 구체화되었습니다.이것이 바로 사실 질문의 힘입니다. 아이가 머릿속에만 담아둔 장면을 언어로 꺼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질문이 글로 이어지는 과정
아이의 짧은 대답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글쓰기의 중요한 시작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가을을 파는 마법사`를 읽고 난 뒤 아이가 “가을을 팔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교사가 이 대답을 그대로 종이에 적어 보여주면, 아이는 자기 말이 글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는 “내가 한 말이 그냥 사라지지 않고 글이 되는구나”라는 작은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다음, 사실 질문을 조금만 더 확장해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팔았을까?”라고 묻자 “장터에서요.”라고 대답한다면, 이제 두 개의 답이 생깁니다. 이를 연결하면 “마법사는 장터에서 가을을 팔았다.”라는 문장이 완성되지요. 아이에게는 두 마디였지만, 교사가 이어주면서 하나의 온전한 문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사실 질문을 던집니다. “가을에는 무엇이 있을까?”라고 물으면 아이는 “단풍잎이랑 시원한 바람이요.”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도 그대로 적어 주면 “가을에는 단풍잎과 시원한 바람이 있다.”라는 문장이 되지요. 이렇게 사실 질문 하나가 답 한 줄을 만들고, 여러 개의 사실 질문이 모여 몇 줄의 문장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 연결되면 짧지만 완성도 있는 글이 만들어집니다. 글쓰기로 나아가는 첫 연결 고리를 사실 질문이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사실 질문의 확장 효과
사실 질문의 장점은 아이가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초등 저학년은 추상적 사고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가?”, “무엇을?” 같은 질문은 부담을 줄이고, 스스로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 줍니다. 또한 사실 질문은 교사가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법사가 가을을 팔았어. 그런데 왜 가을을 팔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이유를 생각하며 답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보이는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이었다가, 점차 이유와 감정을 포함한 답변으로 확장됩니다.
부모와 교사를 위한 도움말
질문은 짧고 명확하게 합니다. 아이가 긴 설명을 못해도 괜찮습니다. 짧은 답을 받아 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아이의 답을 글로 적어서 다시 보여줍니다. 말로만 지나가면 아이는 자신의 대답이 금세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글로 남겨 주면 “내 생각이 글이 될 수 있구나”를 체험하게 됩니다. 확장하고 연결해 보세요. 사실 질문 후 “왜 그렇게 생각했어?” 한마디만 다시 물으면, 아이의 글은 한 줄에서 한 단락으로 자연스럽게 자랍니다. `가을을 파는 마법사`를 읽고 나눈 짧은 대화가 결국 문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한 단어였지만, 그것이 문장이 되었고, 한 단락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출발점은 사실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질문은 아이의 언어와 글쓰기 능력을 키우는 씨앗입 니다. 오늘아이에게 던진 “누가?”, “무엇을?”이라는 질문이 언젠가는 풍성한 글쓰기의 숲으로 자라날 것입니다.